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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에세이 (78)
느리게살기 기자    2012-07-15 20:39 죄회수  3628 추천수 3 덧글수 3 English Translation Simplified Chinese Translation Japanese Translation French Translation Russian Translation 인쇄  저장  주소복사

 

(너에게로 달려갈게)


너 또한 씻겨져야 하리니...

(순창군 적성면 원촌마을)



잠 못 이루는 밤 자정 녘,

장맛비 소리가 멜로디처럼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온 방안을 가득 채운다.


오늘 같은 날은 아주 특별한 밤이다.

빗소리가 행복의 장단을 쳐 주고 나는 그 장단에 맞춰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향해 날개 짓 한다.


나는 비 오는 날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초등학교시절, 엄마가 사 주신 장화를 신고 학교 가는 길은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았던 행복으로의 길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친구들과 골목길 도랑을 막는 물막이 놀이로

날이 저무는 것조차 잊었었다.


바람 부는 날 비닐우산은 날아갈듯, 뒤집어 질 듯 아슬아슬한 고비를

친구들의 합동바람막이 작전으로 무사히 넘겼던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짜릿했던 추억이다.


눅눅한 방, 마루는 비가 들쳐 미끄럽고 저녁 밥 짓는 부엌에는 연기가 자욱했다.

그러나 이내 온기로 방바닥은 행복의 보금자리로 바뀌었고

이불속에서 먹는 감자는 요즘의 그 어떤 탁월한 간식과도 견줄 수 없었다.


천둥번개라도 치는 날이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뚫어진 문 구멍사이로 하늘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듯한 번개 불을 바라보면서

내 지은 죄가 몇 개나 되는지 헤아려 보았다.


“그렇지, 번개는 죄 지은 사람 머리위에 떨어진다고 했지?”

 

(나도 데려가줘!)



자전거로 등하교를 했던 중고등학교 때에는

어찌할 도리 없이 통비를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허다했었다.


시오리 신작로 길, 옷이 젖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고,

오로지 가방 속에 있는 책 걱정이었다.


다행히 비닐로 덮고 꼭꼭 묶어 놓은 탓에 책은 온전했었다.

하지만 내 입술은 완전 보라색....거울속의 나를 보고 씩~ 웃어보았다.


한여름의 논산훈련소, 비 오는 날은 더위를 피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늘 내 왼쪽 가슴 호주머니를 지키고 있던 작은 포켓성경은,

비 오는 날이면 철모 밑으로 재빨리 이사를 했었다.


황산벌의 각개전투장은 발을 떼기 힘들 정도로 미끄러웠고

몸은 온통 땀과 빗물로 범벅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군가로 목이 터져나가는 듯 했었다.

 


섬진강은 어은정에서 오수천을 포용하고

더욱 풍만하고 장중한 모습으로 변모해져간다.


오수천은 섬진강으로 합수를 하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섬진강을 빼박은 모습이다.


지난 며칠간 장맛비로 강물은 온통 흙탕물로 변했다.

수위도 많이 높아져 강의 허리쯤 까지는 물이 차올랐다.


강은 포용성이 뛰어나다.


세상 어느 것이든 수용하고 받아들인다.

오수천과 같은 제법 큰 지류들은 물론이고 작은 도랑, 계곡,

심지어 막무가내로 뿜어대는 하수까지 강은 모조리 수용하고 포용한다.


크다고 받아들이고 작다고 얕보지 않는다.

아름답고, 화려하다고 받아들이고 추하고 빈약하다고 거절하지 않는다.

섬진강은 그 어떤 것이든 비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섬진강은 세상의 온갖 잡동사니들의 집합소가 된다.

오물들, 쓰레기들, 버려진 양심들, 더 채우려는 욕심들.....


어은정 아래, 오수천과 합쳐지는 지점의 잠수교에는

상류에서 떠내려 온 이 땅의 오물들이라는 오물들은 다 걸쳐있다.


섬진강은 좁고 경사가 급한 계곡에서 폭포처럼 떨어져 내리는 성난 물결까지

모두 수용하고 포용한다.


그러나 성난 물결도 섬진강에 포용되는 순간 고요하고 도도한 물결에 휩쓸리고

이내 작은 소리조차 섬진강과 하나가 된다.


깊고 큰 물결일수록 소리가 없는 법,

그 어떤 것이든 섬진강을 마주치고서 잠재워지지 않는 것은 없다.


섬진강은 세상에 얕고 얄팍한 소리만 잠재우지 않는다.


이 땅의 온갖 오염물들을 씻어내려 그의 몸이 구정물이 되지만

그 누구도 탓 하지 않고 제 갈 길만 재촉한다.


내 한 몸 버려 너희들을 씻을 수만 있다면....

 

(적성교에서의 응시...... 강 가운데 학 한 마리 홀로 강을 응시하다)


섬진강은 내 속에 사납게 밀려오는 노도와 같은 풍랑도 잠재운다.


내 속의 온갖 오욕들,

씻어가라! 씻기어 떠내려가라!


미움이여! 욕심이여!

내 속의 들끓는 구정물들이여!

섬진강에 토해 내어 바다로 떠내려가 정화되어라!


너 또한 씻겨져야 하리니...



온갖 세상 짐을 짊어 진 섬진강물이 저 멀리 보이는 적성교 밑을

소리 없이 달려간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


 

태그  하동 조문환,적성군,원촌마을,오수천,어은정,적성교,섬진강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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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2012-07-17 00:26 수정삭제답글  신고
세 상의 모든 시름을 다 씻어 유유히 남해바다로 흘러 내 보내는 섬진강물이 적성교 밑에서는 분노마저도 이미 다 녹아 버렸겠네요. 인생무상 섬진강물
Playmate   2012-07-15 23:51 수정삭제답글  신고
어린 시절 추억의 물막이놀이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글 잘 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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