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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서 온 편지(20)
더페스티벌    2011-06-06 죄회수 3,827 추천수 2 덧글수 2  인쇄       스크랩     신고

 

(담장을 집어삼킬 기세로 매혹적인 덩쿨장미, 농촌의 활력을 제공하는 주인공입니다)



백만송이 장미로 사랑을 표현해 보세요!


‘송장도 일어나서 일을 돕는다’는 모내기철입니다.


실제로 들판에는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말 그대로 사람들로 버글버글 거리고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아무리 넓은 들판이라도 한 두 사람 볼 수 있는데

요즘은 작은 들판이라 하더라도 사람과 기계소리로 활기차 있습니다.


혹시 무덤을 뚫고 조상님들이 찾아오시지 않으셨는지 살펴 볼 일입니다.


요새 눈에 띄게 세상이 화려해 졌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길거리 담벼락과 대문에 넝쿨장미가

흐느러지게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3월의 매화가 만발했을 때 "매화가 미쳤다"는 표현을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의 아내는 다소 오해를 했던가 봅니다.

정신이 약간 나간 매화?로 말입니다. 설마 매화가 정신이 나가겠습니까?


장미가 만발했다는 표현 보다는 어쩌면 장미가 미쳤다는 표현이 더 와 닿지 않으신지요?


신록과 보색을 이루어 그 화려함과 열정이 폭발할 지경입니다.


심수봉씨가 부른 ‘백만송이 장미’라는 노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에만 피어나는 꽃, 백만송이 피어 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에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하나님은 세상에 나를 보낼 때 적어도 백만 번쯤의 사랑은 하고 오라고 하셨는데.....

되돌아 보니 참 인색한 사람이었다는 반성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림학자이신 정헌관박사님이 쓰신 "생활속의 나무"라는 책에 보니

장미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며,

기원전 2000년 전부터 바빌론 왕국에서 최초로 재배하였다는 기록이 있더군요.


사람의 손에서 재배된 역사가 자그마치 4천년이 넘습니다.


장미꽃 향기는 여성호르몬을 자극하는 성분이 있어서

여자들이 장미꽃 향을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프로포즈를 할 때에는 다른 꽃 보다는 장미꽃을 선물하는 것이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하셔야 할 것은 장미에게도 가시가 있다는 사실,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완벽한 것은 없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적절하게 가시가 있는 장미가 더 장미다워 보이지 않습니까?


지난 주에는 죽추(竹秋)애길 해드렸었는데,

여러분들께서 죽추에 대한 소감을 다양하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 중에 현재 하동군 고전면장으로 재임 중에 계시는 이종수님께서 직접 쓰신 시 한수를 보내 주셨습니다.


면장님은 지난 해 "꽃강이 흐른다"라는 시집을 내신 시인이시기도 합니다.




죽추 


초록빛 잔치로 온 세상이

환희에 차 있을 때

홀로 가을을 맞는 나무


한밤 자고나면

한 뼘씩 키가 크는 자식을 위해

제 생명 녹여 탯줄로 보내고

누렇게 황달이 들어

낙엽이 지는 나무


우리 어머니

빈 젖무덤 같은


우리아버지

야윈 등줄기 같은


 

(성님, 오늘 우리집에 매실 따러 좀 오시이소, 내 것 다 따면 성님것도 내가 따 줄긴께!)


불경건했고 철없었던 나의 현충일

저의 첫 현충일은 보리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6월 6일이 되면 동네 형들과 친구들은 한패가 되어

보리가 익어가는 들판으로 가서 너무 설익지도

그렇다고 너무 잘 익지도 않은 적당히 익은 밀이나 보리 이삭을 잘라

우리 동네 뒤를 흐르는 뎅골냇물 백사장으로 갑니다.


돌을 모으고 바닥을 움푹파서 불이 잘 붙게 만든 다음

나뭇가지와 낙엽을 모으고 가져온 밀과 보리를 얹습니다.


그런데 그 시작 시간은 정확히 지켜야만 했습니다.

바로 10시, 읍내에서 울리는 사이렌소리입니다.


완벽하게 준비가 된 다음 10시 사이렌 소리를 숨죽이며 기다립니다.


읍내에서 4킬로가 넘는 곳에 떨어져 있으니 숨죽이지 않으면

그 소리를 잘 듣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사이렌 소리,

당시 우리는 그 사이렌 소리를 오포라 불렀습니다.


시계가 드물었던 시기라 정오가 되면 시간을 알리는 사이렌을 울려주는 것이었습니다.

현충일에는 오전 10시 묵념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 오포(午砲)소리가 울리는 현충일을

오로지 그날, 그 시간에만 국가에서 허락한 보리 구워먹는

공식행사로만 알았던 것이지요.


"야 오포소리 났다, 모두 머리 숙여!"

영문도 모른 채 묵념을 합니다.


"불 붙여!"

형님들의 명령이 하달되면 이내 불이 붙고 보리익는 냄새가 구수했었지요.


이내 새깜해진 입술이며 손을 보면서 으기양양 동네로 돌아왔던 추억이 생생합니다.


이번 현충일은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설마 보리 구워먹지는 않았었지요?


지난 삼일절 무렵에 교회에서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삼일절이 뭐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 드리는 날이라고 하더군요.


그녀석들이나 저나 별반 다른 게 없더라고요.

어떻던 어릴 적 추억만 생각하면 늘 즐겁습니다.

(내랑 같이 놀아줄 사람 어디없나? - 청암면 평촌마을 입구의 평화)

 

(회남재의 신록은 찬란하기까지 했습니다. 비포장도로와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역사와 문명의 교차로 회남재 (回南峙)를 걷다!


우리나라의 재(峙)에는 삶의 애환과 역사의 코드가 숨겨져 있는 듯합니다.


교통이 발달한 이후부터 재의 효용성이나 가치가 땅에 떨어져 버렸지만

우마와 보행에 전적으로 의지했던 시기의 재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모퉁이 길처럼 인생과 역사의 험난한 고비를 상징하는

역사와 문화의 DNA가 숨어 있는 장소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재는 한국인의 대표적 정서 중에 하나였던 한(恨)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남의 장소보다는 이별의 장소였으며,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얘기들이 재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동에도 많은 재가 있습니다.


하동읍과 적량면을 가르는 고개인 꽃다니재는 비오고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처녀귀신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칼을 물고 서 있다는 괴 소문이 나돌아

비 오는 날에는 그 길을 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포장이 되고 도로가 확장되어

차로 지나면 채 1분이 걸리지 않는 우스운 고개가 되었습니다.


전라도 광양과 하동의 경계에는 매티재가 있습니다.


섬진강을 건너면 바로 전라남도 광양 땅이지만

바로 강 건너 섬진강변 광양시 다압면 지역은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하동과 맥을 같이했을 뿐 아니라

현재에도 같은 생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전라도 땅은 매티재를 넘어서부터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과 고개하나 넘었을 뿐인데

굽이굽이 모랭이를 돌아 재를 넘어서인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자네 어~디서 왔당가?’



제가 태어났던 적량면에는 유명한 공드림재가 있습니다.


불과 최근 몇 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뜻을 알 수 없었던 "공드럼재"로 알고 있었는데,

그 정확한 발음이 "공드림재"라는 것을 알고는

그 재에 깊은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적량면지를 뒤져보니 이 재를 통하여 보부상은 물론

원님까지도 서울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다는 기록이 있었으며

"그 재가 하도 높아서 공중에 매달려 잇는 것 같다"하여 공드림재라고 했다는데

한양 사람들도 공중에 달아 매인 재가 어떻게 생겼는가하고 구경까지 왔다고 합니다.

(회남재에서 바라본 지리산 능선, 중간지점이 구재봉이며 끝점은 섬진강 건너 백운산)


그런데 제가 확인 한 바에 따르면 이 재가 공드림재가 된 연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이 재는 경상도 사람들이 한양으로 가는 통로였는데

그 중에는 과거시험을 치러 가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해마다 과거시험을 쳤지만 매번 낙방하던 선비가 기도하던 중 꿈에 신령님이 나타나

공드림재에 있는 바위를 구재봉으로 옮겨 놓으면 시험에 합격 할 것이라는 응답을 주었습니다.


원래 그 바위는 구재봉에 있었던 것이었으나 행동이 바르지 못해

구재봉에서 쫒겨난 신세였습니다.


선비는 그날부터 혼자 바위를 옮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워낙 바위가 커서 옮길 수 없어 낙담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선비의 주경야독을 도와준 반딧불들이 선비의 평소 선행과 큰 뜻에 감복하여

백만 대군의 반딧불들이 모여들어 그들의 발에 송진가루를 뭍여 구재봉으로 옮겼습니다.


선비는 그길로 가서 과거시험을 쳤는데 합격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로 이 재는 공드림재라고 불렸고 그 후에도 선비 뿐 아니라

애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 병 들린 사람들 등 수 많은 사람들이

공드림재를 찾아 기도하면 소원이 성취되었다는 얘깁니다.


지금도 구재봉 정상부근에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마치 밑에서 보면 말의 귀처럼 솟아 있습니다.


실제 이 공드림재는 반딧불고개입니다.


지난 해 추석 날 저녁 반딧불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가족들을 차에 가득 태운 채 반딧불을 확인하러 나섰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후 라이트를 껐더니 어디서 날아왔는지 하늘에서 불똥이 떨어지는 듯 하였습니다.

요새 반딧불이 다시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렇게 반딧불이 많은 곳은 처음이었습니다.



다시 재의 본류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요새는 사람들이 돌아가는 것, 힘들에 올라가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돌아가는 대신에 직선으로 길을 만들고 오르막길을 가는 대신에 간단하게 터널을 뚫어 버립니다.



연거푸 2주연속 회남재를 다녀왔습니다.


회남재는 하동 악양면과 청암면을 연결하는 아주 유명한 하동의 대표적인 고개입니다.


이 재가 회남재로 이름이 붙여진데에는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하동이 고향인 진주교육대학교 곽재용교수님이 저에게 보내주신 편지를 그대로 옮겨 봅니다.


『자료에 의하면 회남재는 회냄이재, 해내미재라고도 불렸으며 남명 조식선생이 악양을 구경하고자 산청에서 이 고개에 당도하여 악양을 내려다보니 골이 협소하고 물이 섬진강으로 바로 빠져 길지가 아니라며 되돌아 갔다하여 지어진 이름이 바로 회남재라고 합니다.


이를 뒷받침 하는 듯한 역사적 기록이 남명선생이 하동의 쌍계사와 신흥사, 칠불사 등을 유람하시고 쓰신 유두류목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24일. 새벽에 흰죽을 먹고 동쪽 고개를 올랐다. 이 고개는 "삼가식현(三呵息峴)"이라 부르는데, 고개가 높이 솟아 하늘에 가로놓여 있어서, 올라가는 사람이 몇 걸음 못 가서 세 번이나 숨을 내쉰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두류산의 원기가 여기까지 백 리나 뻗어왔건만, 여전히 높이 솟아 작아지거나 낮아지려 하지 않는다”


이 삼가식현은 숨을 세 번 쉰다는 뜻인데 이를 유추해보면 남명 선생이 이곳을 왔을 것이라는 개연성이 있고, 삼가식현이 오늘날 회남재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회남재를 자동차로는 여러 번 넘은 경험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걸어볼 요량이었습니다.


일요일 오후, 높고 긴 고개를 넘기에는 다소 늦은 시간인 5시경이었습니다.


회남재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그림이었습니다.

다소 안개가 깔려 신비로움까지 더했습니다.

아내에게 운전을 맡기고 차창만 응시했습니다.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악양 소재지 정서에서 회남재까지는 약 15킬로의 거립니다.

굽이굽이 적어도 100 모랭이는 되는 듯 하였습니다.


고개로 올라갈수록 선명하게보이는 무딤이 들판,

그리고 나지막이 흐르는 섬진강


회남재는 해발 926미터로 악양에서 올라가는 구간은 수년전에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차량중심의 도로로 만들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회색의 무미건조한 시멘트포장 길,

운전하기는 편하지만 느낌이 전혀 없는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신록이 우거져 터널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시멘트길의 황량함은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윽고 회남재에 도착했습니다.

육중한 몸무게를 지닌 저의 애마인 카니발은  엔진부위에서 열이 펄펄 끓어올랐습니다.


지난 해 만들어 놓은 정자가 반겼습니다.

악양골이 한눈에 쫙 빨려 들어왔습니다.

여러 번 보는 경치지만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처음 이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분위기와 정취에 압도당하고 남을 것입니다.


"왜 조식선생은 여기서 다시 돌아갔을까?"

"왜 악양을 길지로 보지 못했을까?"하는 의문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분명 내 눈에는 길지중의 길지요, 풍수를 전혀 모르는 저도 복된 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데,

왜 조식선생님은 그렇게 보지 못했을까?


우선 그 고민은 이쯤해서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내리막길, 오르막이 있으면 정확히 오르막 만큼의 내리막이 있는 법,

차의 엔진도 열을 내릴 수 있는 곳입니다.


내리막길을 2킬로정도 가면 드디어 포장구간이 끝나고 흙냄새 가득찬 비포장도로입니다.


바로 다음 모랭이길에 애마를 매어두고 걷기로 했습니다.


회남재길이 완전 포장이 되어 버렸다면 구태여 더 이상 올 필요가 없습니다.


비록 일부 구간이지만 포장되지 않은 원시모습의 길이 있다는 것이 회남재를 찾은 이유입니다.

차를 타고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맑고 수십 종류의 새 소리, 잎사귀를 스치는 바람소리,

계곡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노랗게 피어난 야생화,

솜털처럼 피어난 마가목 꽃,

나뭇잎과 꽃에서 풍겨 나오는 숲의 향기,

지난밤에 내린 비로 웅덩이에 고인 물,

그 고인물의 형상이 곰 같기도 하고 토끼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개구리 부부의 적나라한 사랑나눔까지 숨죽이며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도로 가운데 차량 바퀴가 닿지 않는 곳에 자라난 잡초마저도 그림이었습니다.

노래가 흥얼거려지고 휫바람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 이렇게 좋은 곳이 또 어디 있을까?"

"도시에서 문명혜택을 받지 못한 자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보응이랄까?"


비 포장구간은 약 5킬로정도 되나봅니다.

모랭이를 돌아면 또 다른 모랭이가 나오고 저 밑에 청학동이 보이지만 끝이 없었습니다.


허기가 지고 가져간 빵 한 조각에 의지해 걷다보니 어두워져 더 이상 걸을 수 없었습니다.


끝까지 가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걸으면서 느꼈던 행복감이 너무 크게 다가왔습니다.

마음속으로 다음 주에 아이를 데리고 꼭 와야지 하는 다짐이 생겼습니다.


한 주 내내 그 회남재에서 받은 원기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 다음 주, 역시 일요일 오후에 지난 주 보다 조금 더 일찍 출발했습니다.


이번에는 꼭 다 걸어보리라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는 안개로 신비한 느낌까지 있었지만

이번에는 나뭇잎이 태양에 투과되어 이파리마다 원색의 물결이었습니다.


"어떻게 초록이 이처럼 푸르고 투명할 수 있을까?"


억지로 따라나선 아이는 우리가 느끼는 감흥과 자연의 신비로움을 예사롭게 여기는 듯 했습니다.


출발할 때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더니 이윽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참 부모마음 이해 못하는 녀석이구나!

자연을 보여주고 싶어서 시간을 내었건만.... 언제나 철이 들런고?"


"여기가 회남재야, 조식선생님이라고 계셨어.

우리 선조지. 그 분이 여기에서 다시 돌아가셨다고 해서 회남재야,

저~기 좀 봐, 악양이야, 저 계단식 논, 아름답지 않아?"


아름답다고 하기는 커녕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 자식을 키우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구나!"


지난 주 걸었던 구간정도에서 차를 세워두고 다시 걸었습니다.

숲이 우거진 회남재 숲길은 최고의 걷기 코스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청학동에까지 도착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연에 취하고 즐기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했기도 했지만

어둔 시간에 삼성궁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이 문제였습니다.

다행히 삼성궁에 악사로 계시는 율비선생님을 태우러 왔던 갤로퍼집차가 우리를 살려주었습니다.


율비선생은 부산에서 락 밴드를 10년 동안 하셨는데

우리 전통음악에 반해서 거문고와 단소를 배워

주말에 삼성궁에서 연주를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2주 연속 회남재를 걸은 것은 다시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회남재 입구 등촌마을부터 삼성궁까지 걸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걸을 때에야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회남재에서 바라본 악양들, 계단식논이 하나의 예술품을 연상케 합니다)





이제 회남재로 좀 더 깊이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회남재는 물류 흐름의 고속도로였으며 정보의 광케이블이자,

요새 같으면 SNS와 같았습니다.


이 재를 통하여 함양과 산청의 산죽이며, 장작이며 각종 산골 물품이 이동되어

악양 개치포구에는 섬진강 하구에서 나룻배를 타고 올라온 소금과 조기 등

해산물과 물물교환 되었다고 합니다.


악양장날이면 회남재를 넘는 사람들로 붐볐다고 하니

회남재의 효용성이 얼마나 컸었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하동은 섬진강문화와 지리산문화가 공존한다는 설이 있습니다.


때로는 두 문화가 충돌하고 대립과 경쟁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공존을 통한 상호 보완을 통해 독특한 하나의 문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남재를 다녀 온 후,

"남명선생이 당시에 회남재를 넘어 악양에 왔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앞에 말씀드린대로 지리산문화와 섬진강문화의 대융합으로

하동이 가지고 있는 천혜의 자연조건과 역사와 종교,

문화와 예술적 바탕위에 남명선생의 실천적 성리학의 접목이 접목되어

하동이 전혀 새로운 문명의 발상지가 되지는 않았을까?


그렇다면 지금의 하동은 심오한 사상적 토대위에

더욱 더 다양성이 발휘된 도시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저는 요새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인생은 늘 갈림길에 서 있다. 작은 결정 하나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만들고 그것이 더 큰 바람과 파도를 만들어 태풍을 부른다.


비록 나비효과나 카오스이론 이라는 좀 멋져보이는 용어를 굳이 활용하지 않더라도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모두 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이다. 나아가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래서 어떤 문제도 비판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종의 각성적 다짐을 해 본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한반도의 역사를 갈랐고 고대 로마의 카이사르가 루비콘을 건넌 것이 로마 뿐 아니라 인류역사의 운명을 가른 것을 두말할 것 없이 나의 작은 몸 짓 하나도 나비효과처럼 흔적을 남길 것이다.


하물며 남명선생의 회남재 사건?은 하동으로서는 중요한 문화적, 역사적 의미를 더할 수 있음직한 거대한 나비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문화융합의 기회를 놓친 결과가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머리가 좀 복잡 해 집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역사는 되돌릴 수 없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판단착오나 실수로

되돌릴 수 없는 과오는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회남재는 지금의 모습으로도 대한민국 그 어느 곳에 내 놓아도 손색없는 숲길이며 보물입니다.


굳이 역사적 의미까지 더할 필요는 없더라도

지금까지 포장되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고 한다면

남은 구간은 자연 그대로의 숲길을 일부 보완하는 차원에서 보존하고 관리하여

우리의 후손들도 그 길을 걸으면서 저와 같은 황홀경에 빠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여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그것이 부정의 나비효과를 낳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 

 

 

 

 

태그  장미, 죽추, 지리산, 섬진강, 조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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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tah   2011-06-15 18:11 수정삭제답글  신고
장미넝쿨이 있고 화려한 장미꽃이 담장에 있는 집은 대개 부잣집일텐데^^
젊은이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하동이 되길 은근히 바랍니다.
HappyMom   2011-06-08 15:24 수정삭제답글  신고
죽추라는 시를 읽으며 인생을 생각해 봅니다. 제 생명 녹여 탯줄을 보내고..
Bamboo, 대나무처럼 내 자식도 속이 비었지만 단단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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