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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의 지리산별곡 제21호 왕시루봉 갈증이며 갈망인
조문환 기자    2017-11-22 22:33 죄회수  5768 추천수 5 덧글수 4 English Translation Simplified Chinese Translation Japanese Translation French Translation Russian Translation 인쇄  저장  주소복사

왕시루봉, 갈증이며 갈망인

(구례군 송정 ~ 하동군 법하마을)

 

겨울은 행복이다.

진솔함이며 가난함이며 낮은 자리다.

나를 나타내지 않는 깊은 사색으로의 동면은 내면의 윤활유를 칠하는 시간이다.

사고의 경계를 넓히며 상상력의 날개에 근육을 더하는 시간이다.

 

이는 겨울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며 나머지 계절을 행군함에 있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고

사막 한 가운데로 샘솟는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는 것과 같다.

겨울의 낮은 자리가 이처럼 삶의 미학으로 다가온 것은 난생처음이다.

자연이 내게 안겨 준 소중한 선물이다.

 

나는 요즘 새벽마다 겨울이 주는 선물을 듬뿍 받는 재미로 일어나곤 한다.

 

하늘을 배경으로 전라(全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가는 나뭇가지들,

, 하늘이 없다면 그 귀하고 낮은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뭇가지가 없었다면 하늘이 그토록 담담하고 매력적일 수 없었을 것이다.

 

하늘이 없었다면 벗은 나뭇가지는 어디다 그 멋진 전라의 모습을 비춰 줄 수 있을까?

어디다 그 분출하는 가슴을 풀어헤쳐 놓을 수 있을까?

하늘이 있기에 그 모습이 드러나고,

하늘이 있기에 광기 서린 미감을 화선지에 휘갈겨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뭇가지가 없었다면 하늘이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겠으며

나뭇가지가 없었다면 하늘은 그 고독을 어디다 쏟아 놓겠는가?

 

이처럼 겨울의 하늘과 마른 나뭇가지는 천생연분, 견우와 직녀다.

 

그럼으로 겨울에서 봄이 피어나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그 고매한 겨울이 있기에 황홀한 봄이 탄생할 수 있을게다.

겨울이 고맙다.

오늘은 왕시루봉의 발가락을 간질이면서 세 개의 큰 고개를 넘어야 한다.

첫발을 떼는 송정고개마루와 갈림길이 있는 목아재,

그리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가 되는 작은재다.

 

왕시루봉은 섬진강을 젖줄로 삼아 천왕봉으로, 태백산으로

그리고 금강산을 넘어 백두산으로 부지런히 그 양분을 져 날라야 한다.

뚜렷한 이름 없이 그 소중한 작업을 감내해 내고 있다.

 

왕시루봉으로 나가는 길에 곧 눈이라도 퍼부을 듯 하늘이 새까맣다.

눈이라도 펑펑 내려 갈길 잃은 산토끼와 같이 걸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봉애산은 왕시루봉 아래 작은 뫼다.

그 아래 내한마을은 송사리 몇 마리가 내 손바닥 위에서 노니는 것처럼 나를 간지럽힌다.

가끔씩 눈 속에 파묻혀 달포를 지내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장작으로 군불을 때고 책을 베고 누워 공상도 하고

하루 한 끼 정도는 고구마를 간식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기에 남쪽 지리산 자락에서 안성맞춤인 곳이 내한마을이지 싶다.

 

이것이 내 기도가 되었는가 보다.

왕시루봉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연줄에 매달려 내려오는 듯 눈발이 직선으로 꽂힌다.

 

생콩을 맷돌에 넣고 돌리면 하얀 거품이 되어 흘러내리듯

누군가가 왕시루봉에서 연신 눈 맷돌을 돌리고 있는 것 같다.

이 내리니 어릴 적 추억이 또 새록새록 돋아나서

아내에게 나의 초등학교 시절 얘기를 했더니 배를 잡고 웃는다.

 

일학년이지 싶다.

국어인지 음악인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으나 시험문제에 이런 것이 출제되었다.

 

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 )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당시 내가 알고 있었던 최고의 단어는 선생님이었다.

선생님들이 눈을 뿌려 주는 줄 알았다.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괄호에 써 넣은 답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들 외에는 이 위대한 일을 해 줄 분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답은 선녀님이었다.

 

선생님이 절대적인 존재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선녀라는 단어 자체를 알지 못했던 것이 더 큰 원인이기도 했지 싶다.

 

그 후로부터는 눈은 정말 선녀가 뿌려 주는 줄 알았다.

하늘에는 선녀가 정말 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 꿈이 언제 깨어졌는지 모르지만 아쉽다.

나이가 들면 이처럼 꿈도 깨어지고 모든 것이 계산적으로 바뀌니 말이다.

이런 동화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시간이 있었던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 오늘은 왕시루봉에서 선녀님들이 눈을 뿌려 주는가 보다

내가 온다고 반가워서 그러겠지?

선녀님 더 많이많이 뿌려 주세요

아마 그때라면 이 생각을 하면서 봉애산자락을 걸었을 것이다.

 

이것이 기도가 되었는지 모른다.

눈이 말 그대로 펄펄 내리기 시작했다.

왕시루봉에서 출발한 눈발이 봉애산을 거쳐

이 작고 낮은 지리산 자락 끄트머리까지 타고 내려왔다.

 

강 건너 백운산은 이미 하얀 고깔모자를 썼다.

덕분에 섬진강은 하나의 여운으로 흘렀다.

강물 위에 하얀 점들이 연속적으로 찍히기 시작하더니

그 문양이 마치 표범의 색깔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표범이 긴 꼬리를 흔들며 바다로 걸어가는 것처럼 연상이 되었다.

 

구례 토지에서 만나기 시작한 지리산과 섬진강은 송정에 이르러 드디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목아재를 넘고 추동과 기촌마을을 지나 작은재로 오르는 산행은

입에서 타는 내가 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시선은 길 보다는 오른쪽을 갈망하고 있다.

나의 갈증인 섬진강이다.

섬진강은 단 몇 분도 나의 시선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그는 내 서정의 샘이요 근원이다.

 

 

눈을 만들어 보내는 지리산 왕시루봉, 그 위에 점을 찍어 놓은 섬진강

둘은 늘 내 관념의 고향이고 스승이고 친구이고 애인이다.

오늘 둘은 나의 지리산 산행에 축하라도 해 주는 듯 눈으로 환영회를 열어 주었다.

  

 

작은재는 화개장터에서 황장산을 지나 토끼봉으로 이어지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능선을 지키는 수문장이다.

 

작은재는 이곳 등산로의 요충지답게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어안동이라고도 하는 작은재에 오르니 화개장터 건너 가탄마을이 깃발처럼 나부낀다.


섬진강이 여기까지 육백 리를 달려온 것은 그의 갈망 때문이다.

바다에 대한 그리움,

지리산 왕시루봉을 향한 갈증과 갈망,

나의 이 흐름을 지켜 봐 주고 힘이 되어 줄 왕시루봉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염원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누군가의 갈망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를 갈망하여야 한다.

갈망이며 염원이 되어야 한다.

갈망이며 염원을 하여야 한다

 

섬진강이 갈망이며

왕시루봉이 갈증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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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Girl   2017-11-27 21:37 수정삭제답글  신고
꾸불꾸불 길따라 물따라 이야기가 서리서리 스며 있겠지요 제발 자연그대로 놔둔다면 얼마나좋을까요 개발을 해서 도시화 하는게 능사는 아닌데
은종이   2017-11-23 15:14 수정삭제답글  신고
올핸 11월20일 첫눈이 내렸어요 괜히 눈이내리면 기분이 들뜨게 되죠~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ㅎㅎ
ArtPR   2017-11-23 14:56 수정삭제답글  신고
섬진강에 눈이 내린다.. 표범의 꼬리 처럼 서서히 남해바다로 훌러들어가는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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