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김치문화축제 하동야생차문화축제 등 남도의 문화축제를 쥐락펴락하는 축제기획의 산증인 정삼조(鄭三朝) 감독은 긴 머리채 휘날리며 꾸밈새보다는 문화 내면의 진실을 바라보는 중심적 사고가 있다.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도 존재하는 문화의 비균질감을 받아서 녹여내는 그의 문화수용 능력이 크게 돋보인다. <더페스티벌>이 그를 찾았을 때, 심오한 그의 표정에서도 문화 포용력이 나타나 있었다. 그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해 본다.
TheFestival: 올 봄에 하동야생차문화축제가 축제인의 감흥을 불러 일으키며 성황을 이뤄냈는데 그 비결이 무언지 우선 궁금하네요?
정삼조: 과찬의 말입니다. 저는 그저 제2대 감독으로서 조정국(趙铤國) 초대감독의 뒤를 따랐을 뿐인데요. 하동이라는 슬로시티 고유의 문화가 야생차문화축제 개념에 딱 들어 맞는 게 비결일 겁니다.
TheFestival: 너무 겸손하십니다. 축제는 킬러컨텐츠가 있어야 성공한다고 합니다. 차수연회 등 장수를 상징하는 차수(茶壽)와 축제를 상징하는 연회(宴會)라는 말을 사용하여 프로그램 이름을 지은 것도 독특하구요..
정삼조: 그렇습니다. 차수연회와 함께 섬진강달빛차회 그리고 차인한마당을 들 수 있지요. 생각한것 이상의 호응이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만, 항상 부족함을 느낍니다. 체험행사가 좀 더 세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엔 2가지 정도의 새로운 체험이벤트 행사를 준비해 볼까 합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TheFestival: 축제의 나라 대한민국을 꿈꾸는 더페스티벌입니다. 축제를 기획 연출해 내는 감독으로서 우리나라 축제를 보는 시각이 궁금한데..
정삼조: 우리 축제요~ (머뭇) 먼저 우리는 축제 또는 페스티벌이라고 쓰는.. 이 용어의 정리부터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사육제(謝肉祭)에서 비롯된 카니발(Carnival)과 연극제(演劇祭)에서 기원된 페스티벌(Festival)은 서양에서 쓰는 용어이고, 제사(祭祀) 또는 영어 Ritual의 의미를 갖고 있는 일본의 마츠리(まつり)는 구태여 번역을 하지않고 일본말 그대로 쓰고 있지요.
우리도 연행(宴行)이라는 우리 말이 있고 전해 내려오는 용어로 짓, 판, 거리, 마당, 굿, 놀음 등 각기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축제를 뜻하는 우리 말이 분명히 있습니다.
TheFestival: 그럼 우리도 축제 또는 페스티벌을 쓸 게 아니라 연행이라고 써야 되겠군요? 그 건 부르기도 그렇고 영문표기도 그렇고 쉽지 않을텐데요?
정삼조: 그래서 저는 굿(GUT 또는 KUT)이라는 말을 사랑합니다. 우리나라는 마을 굿판이나 마당굿을 오랜 동안 펼쳐 왔기에 한국적 축제미학이 내재된 ‘굿’이라는 용어를 지금이라도 널리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축제가 일본의 마츠리처럼 세계성을 발휘할 계기가 될 것입니다.
TheFestival: 마을굿판이 벌어지면 모두가 들떠 축제분위기를 만들어 가던 게 사실이지만 요즘엔 좀 시대감각에 맞지 않는 게 아닐까요?
정삼조: 마을굿판이 벌어지면 애들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하나되어 축제가 벌어지지요. 앞으로의 굿은 그 걸 그대로 재현하되 ‘전통축제의 현대적 재창조’를 해야 합니다. 한국의 전통은 인류학적으로 나름대로 특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굿은 무당굿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짓과 거리 마당을 아우르면서 크게 한통속을 이루는 굿은 마을굿, 풍물굿, 두레굿, 놀음굿에 난리굿까지 집단적인 대동놀음이 다양한 형태로 전해내려 왔습니다.
TheFestival: 감독님은 이러한 굿의 용어를 사용하려는 시도는 좀 해 보셨나요?
정삼조: 해 봤지요. 결국 종교적 이슈로 못 하게 되었지만 계속 시도해 보려 합니다. 현대 한국기독교는 굿을 전통문화로 바라보지 않고 미신 숭배 행위로 보면서 터부시 한 겁니다. 제례의식을 따지지 않고 문화로 계승 발전해 가는 마츠리 천국 일본이 부럽습니다.
TheFestival: 마츠리라고 부르는 일본의 축제 중 하나를 소개해 주신다면?
정삼조: 요사코이 마츠리를 예로 들겠습니다. 요사코이 마츠리는 일본의 전통을 소재로 현대감각을 입힌 성공한 축제입니다. 코오치 요사코이가 삿포로 요사코이를 낳기도 했고 일본 전역에서 요사코이 마츠리가 행해지게 되어 일본 현대축제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매년 8월 코오치시 도심 번화가에서 4일간 개최됩니다. 상가진흥제로 시작하여 집단 춤경연대회로 발전했고 우리나라의 축제전문가들이 자주 연구대상으로 삼기도 했지요.
TheFestival: 이 축제의 성공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정삼조: 기본 틀이 있습니다. 최소한 지켜야하는 룰이랄까, 기본규정입니다. 나루코(鳴子)를 꼭 서야합니다. 나루꼬는 짝짝이 같은 건데 새를 쫓을 때 쓰던 리듬악기입니다. 또 요사코이부시라는 음악을 기본으로 해야합니다. 에도시대 사랑이야기를 풍자해서 만든 가사를 담고 있답니다. 그 다음에는 지카타샤(地方車)라는 음악연주용 대형트럭입니다. 오도리코대라는 긴 음악행렬의 반주를 맡은 차량입니다. 또 무엇보다도 의상과 바디페인팅도 축제성공의 큰 역할을 하고 있지요.
TheFestival: 우리나라에는 그런 축제를 할 만한 게 없을까요?
정삼조: 많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 저희 고향 남도의 마을굿 중 하나인 진도영등제를 들고 싶네요. 내가 좋아하는 축제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신비의 바닷길이라고 이름이 바뀌어서 축제판이 벌어지지요. 좀 왜곡돼 가는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TheFestival: 진도영등제는 현재 진도 신비의바닷길축제에서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말이지만 뽕할머니전설이나 강강술래 씻김굿 등의 진도 고유 민속예술은 축제에서 펼치고 있던데요?
정삼조: 300년 이상의 전통 있는 진도영등제의 근원은 뽕할머니 연관된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어서라고 봅니다. 이 야기는 진도 역사를 축약하고 있기도 하지요. 지금도 모도와 회동리 사이에 굿판이 벌어지고 있지만 신화적 요소와 마을굿의 정신은 거세되고 물이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 이벤트로 변질이 된 게 안타깝다는 겁니다. 영등제가 복원되어야 합니다. 나의축제기획 재능을 마지막으로 불사르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진도영등제를 단연코 첫 번째 꼽으렵니다.
TheFestival: 우리나라 축제가 참 많은데 진도영등제 외에 또 어떤 축제가 전통의 요소를 지니며 성공할 만한지요?
정삼조: 춘천마임축제를 들고 싶네요. 내가 좋아하는 축젭니다. 마임이스트 출신의 유진규 감독이 창시한 것이고, 끊임없이 진화되어 가는 모습이 나에게는 존경스러운 축제이기도 합니다.
TheFestival: 어떤 면이 그렇게 정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는지요?
정삼조: 그야말로 굿的인 요소가 많습니다. 신화나 한국적 서사를 축제화해 낸 것으로 깊이가 있습니다. 도깨비난장을 만들어냈지 않습니까? 공지어 신화의 스토리텔링도 만들어 냈습니다. 이게 마을굿의 본질입니다. 우리나라의 성공한 축제기획임에 틀림없습니다. 안동탈춤페스티벌보다 진화가능성이 있는 축제라고 봅니다.
유명한 축제는 기획자의 무한한 상상력에서 비롯되지요. 사회공감대를 열어놓고 진화를 거듭해 나가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춘천마임축제가 대표축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것 또한 전통적인 것을 열거만 한 게 아니라 현대감각과 결합하여 호흡을 넘나들고 있다는 것이지요. 현대적 재창조를 제대로 해낸 겁니다.
TheFestival: 많은 국내 축제를 경험하셨는데, 다른 축제는 또 없습니까? 전통을 녹여내는 노력을 했던 실패담이나 에피소드는 없으신지요?
정삼조: 영암왕인문화축제 소떼굿을 시도했었습니다. 잘 안됐습니다.
가는 곳마다 기독교 문화와 충돌했습니다. 종교적 이유가 우리문화 활력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자국의 문화를 종교적인 이유로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TheFestival: 그렇군요. 마을굿판이 무속신앙 만을 지칭하는 무당굿 뿐 아니라 마을굿, 풍물굿, 두레굿, 놀음굿, 난리굿 등 다양한 축제마당이 많은데, 그러면 축제발전을 위해서 어떤 전환점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삼조: 연행의 대표적인 행위인 탈춤놀이가 제대로 보존되어야 합니다. 인간문화재 대가 끊겨가고 있습니다. 정부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장인이 만든 공예품이 고가에 팔리는 일본과, 기와 장인인 와공이 만든 기와가 팔리지 않는 우리나라를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한 기와장인의 대를 누가 잇겠습니까? 후계자가 안 나오거든요? 문화재보호정책에 정부가 심각히 검토할 때입니다.
TheFestival: 열거한 축제들이 문화관광축제와 기준이 좀 다른 것 같은데요..
정삼조: 다릅니다. 축제가 관주도로 이루어진 이유도 있지만, 관에서도 축제를 관광산업과에서 만들기 때문이예요. 사실은 문화예술과에서 관장을 해야 합니다. 관광객을 끌기 위한 축제가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파생되어 전통을 보존해가고 예술적인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이제라도 문화산업과 지역활성화 담론에만 집착하는 현실인식에서 벗어나서 전통축제의 현대적 재창조에 매진할 때입니다.
TheFestival: 끝으로 더페스티벌 회원들에게 한마디..
정삼조: 축제는 기획자가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참여자가 만듭니다. 아니, 만들어 갑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우리모두에게 있어야 합니다. 전통적인 것에 대해 큰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를 잘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일에 함께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삶이 풍요로워지려면 축제를 참가해야 한다고 한다. 한국적 축제미학이 내재된 ‘굿’이라는 용어를 다시 사용하기를 주장한다. 민족의 단합이나 주민화합을 위해서 마을굿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인터뷰 후에도 축제의 본질을 짚어보는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더페스티벌>과 축제인(祝祭人) 정삼조 감독은 "축제포럼" 자리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참조 - (축제인물) 정삼조: //www.thefestival.co.kr/marketing/people/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