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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의 지리산별곡 제26호 청학동이 어디냐 무릉도원이 어디메냐
조문환 기자    2018-01-01 20:29 죄회수  10260 추천수 3 덧글수 2 English Translation Simplified Chinese Translation Japanese Translation French Translation Russian Translation 인쇄  저장  주소복사

청학동이 어디냐, 무릉도원이 어디메냐?

(청학동 ~ 불일폭포)

 

일행과 청학동으로 가기 위해 하동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에는

아직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이었다.

터미널은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것처럼 칙칙했다.

 

조도가 낮은 조명, 작은 난로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앉거나 서 있는 촌로들,

광양으로 구례로, 남해와 서울로 가려고 시동을 걸어 놓은 버스들이 매연을 뿜어 대고 있었다.

 

세상에 가장 불친절하고 퉁명한 사람들은 아마 매표소 직원들일 게다.

이것은 대한민국이나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바빠서도 그렇겠지만 그 어느 매표소 치고 미소 한 번 던져 주는 사람 보기 힘들다.

이곳도 마찬가지여서 작은 구멍 사이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퉁명스럽고 싸늘했다.

 

하지만 거기에 내가 휩쓸리면 안 되지,

오늘은 청학동 그것도 내가 늘 무릉도원으로 확신해 왔던

그 상상의 청학동을 찾아가는 길 아닌가?

그것도 처음으로 말이다.

 

그까짓 불친절이야, 그까짓 칙칙하고 어두운 터미널이야 내가 상관할 바 아니지 않는가?

모든 것이 상대화되면 내 마음이 편한데 다 내 마음먹기 나름 인데 말이다.

 

요행히도 우리가 탄 청학동행 완행버스는 안내양이 탑승하는 버스였다.

요즘 시골에서는 노인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서

일부 버스에 안내양을 다시 고용해서 탑승시키고 있는 곳이 더러 있다.

 

운전기사 또한 사람이 사글사글 거리면서 미소를 던져 주어

한결 나의 청학동행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입산 통제가 갓 해제되어서 그런지

삼신봉으로 향하는 입구부터 시작해서 오르는 등산로에는 아직 눈이 그대로다.

몇몇 발자국은 남아 있긴 하지만 원시의 눈이 나를 맞아 주고 있었다.

 

계곡에는 눈 녹은 물들이 작은 줄기를 이루어 내려가고

원시림처럼 빽빽이 서 있는 나무들은 간혹 산행하는 이들에게

하늘을 선물하도록 하기 위해 구멍을 뚫어 놓기도 했다.

삼신봉은 그동안 몇 차례 올랐었다.

2년 전 삼신봉으로 가는 등산로에서 본 것은 산죽 군락지가 만들어 내는 그 환상적 물결,

그리고 때로는 속삭이고 때로는 철석이며 때로는 합창을 만들어 내는 그 사운드에

감동했었던 기억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 그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았을 터인데,

내 감각이 변해서 일지 모른다.

다소 익숙해져서 그런지 삼신봉까지는 잠깐 만에 올라온 듯했다.

삼신봉은 비록 이번이 몇 번째 오르는 기회지만 늘 감동이었다.

지리산 주능선을 내 손으로 만져 볼 수 있기라도 하는 듯

바로 그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 감동은 꼭 처음과도 같다.

날씨도 늘 도와주어 천왕봉으로부터 시작해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그 춤추는 듯 한 능선은

 

파도가 되어 나에게까지 전달되어 왔다. 

주능선에서 바라보는 온 세상천지 만물들,

산과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마을들,

그리고 더 멀리 남해바다,

! 그 작고 낮은 산들,

 

이름도 없는 그 산들이 어떻게 그리도 선명하게 서 있던지,

작다고 함부로 대하고 이름 없다고 가치 없다고 생각했던 그 산들이

얼마나 또렷이 나를 바라보던지 순간 가슴이 철썩 내려앉는 듯 했다.

 

양심의 가책들이었다.

그래 내려가면 작다고, 이름 없다고 깔봤던 그들에게 용서를 빌 것이다,

다시는 내 그들을 하찮다 여기지 않을 것이다고 다짐 했었다.

 

낮고 작고 느린 것들에 대한 가치를 내가 섬진강에서 발견했듯이

지리산에서 다시 나는 다짐하고 반성했었다.

삼신봉에서 한참을 응시했다.

다소 낮아지고 높아지고는 하지만 한결같은 지리산의 주능선을 바라보면서

그 높고 낮음에 서로 비교하지도 않고 서로 경계하지도 않고

서로 배려하고 함께 서 있는 그 봉우리들을 말이다.

 

이제부터는 내려가는 코스다.

내가 처음 밟아 보는 길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부터 불일폭포, 쌍계사까지는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동안 불일폭포는 셀 수 없을 만큼 다녀왔었다.

봄에 만나는 불일폭포는 참 청아하다.

불일평정의 산 벚 군락지를 통과해서 만나는 불일폭포는 늘 청아하고 첫 경험과도 같았다.

 

여름 장마철에 그를 만나면 나는 없어져 버렸다.

그 사운드에 내가 압도당했고 반사되어 올라오는 포말 속으로 나는 사라져 버렸었다.

 

가을에는 그의 물속에 붉은 색 잉크라도 뿌려 놓았는지

물은 용암처럼 끓는 듯 했었고

겨울에는 순간 응고해 버린 물기둥을 바라보고

나 또한 얼음 동상이 되어 버린 추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결 같이 나를 환상 속으로 이끄는 것은 폭포 너머에 있을 땅,

폭포를 만들어 내고 폭포를 사시사철 변하게 하는

그 폭포의 근원에 대한 이상과 환상이었다.

과연 무엇이 있기에 이 불일폭포를 있게 했을까?

내가 생각했던 상상은 이렇다.

폭포 위 저 멀리 아득한 곳에 넓은 평원이 있다.

그 평원은 신이 지배를 하지만 신에 억압당하지 않고

신을 경배하지도 않으면서도 늘 자유롭고

이 땅의 땅이 아닌 천상의 땅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이었다.

 

분명 저 폭포를 뚫고 넘어 가면 현세와 다른,

다른 차원의 땅이나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나 언젠가 그 곳에 가서 그 땅을 확인해 보겠노라고 다짐했었다.

사람들의 표현으로 하자면 이것이 무릉도원이 아닌가? 이것이 청학동 아닌가?

 

이 땅에 청학동이 여럿 있지만 내가 믿는 바로는,

내가 확신하는 청학동과 무릉도원은 바로 불일폭포를 만들어 내는 그 곳이

바로 청학동이요 무릉도원이라고 믿어 왔었다.

 

바로 오늘, 나는 나의 그 믿음을 확인하고 증명하는 날임과 동시에

나의 꿈을 이루는 날이 바로 오늘인 것이다. 

1284미터의 내삼신봉과 1354미터의 외삼신봉을 거쳐 열쇠바위라는 곳을 지나

상불재를 무사히 통과해서 청학동마을과 삼성궁을 뒤로하고 서북쪽으로 하산했다.

 

원시림과도 같은 참나무 군락지들,

간혹 소나무 숲에 태양이 강열하게 내렸고

그 사선을 경계로 어둠과 빛이 공존하고 있었다.

 

해가 곧 바뀔 시간인데도 아직도 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마른 나뭇잎들이 가지에 붙어 있다.

녀석들은 언제 집으로 갈 것인가?

참나무 군락지 아래는 산죽들이 평원을 이루고 있다.

 

이들도 바람이 불면 파도처럼 일렁이고 혹시 달이라도 뜨는 날이면

달빛에 반사되어 월광곡에 맞춰 춤 출 것이다.

 

등산로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한 번씩 물소리가 들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분명 그 소리다.

점점 폭포가 가까워져 오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바로 그곳 무릉도원,

내 관념의 청학동이 근처에 있음을 직감 할 수 있었다.

 

그게 맞다면 곧 평원이 나타날 것이고

어디쯤엔가 그 폭포의 근원이 되는 곳에서 폭포를 만들어 내는 신과 천사들이

물을 길어 내어 폭포로 흘려보내고 있을 것이다.

 

천상의 나무들과 형용 할 수 없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그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아름다운 음악 소리도 들리겠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상상을 하고 그런 모습들이 내 눈 앞에 그려지기들 기다렸다.

하지만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울창한 나무들과 때로는 잡목 군락지,

내려갈수록 하얀 눈은 없어지고 잔설 사이로 드러나는 마른 풀들과 낙엽,

세월을 먹고 변해 버린 검은색의 땅들,

급경사 등산로와 저 멀리 보이는 낭떠러지,

 

아 저기 저 멀리 내가 늘 만나는 화개천과 건너 용강마을이 바로 눈앞이지 않는가? 어느새 나는 폭포를 지나쳐 버렸고 휑하니 허탕 친 사람 마냥,

작은 등산로에 서 있지 않은가?

  

차라리 가지 말 것을, 영원한 나의 무릉도원으로 남겨 둘 것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청학동 하나를 내 품에 품어 둘 것을,

아무도 침입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치고 거기에 파수병 하나를 세워 둘 것을.

  

! 나는 오늘 나의 꿈 하나를 잃어 버렸다.

내 상상 속에 늘 한결 같이 자리 잡고 있던 나의 고향 하나를 잃어버렸다.

어디서 나의 무릉도원을 찾을 것이며 나의 청학동을 다시 찾을 것인가?

포맷되어 버린 기계처럼, 현실을 봐 버린 나의 무릉도원이여,

내 상상 속의 무릉도원까지 뺏어 가 버렸다.

 

다시 돌아와 어둠이 내린 듯 했던 하동시외터미널을 생각한다.

그 속에 웅크리고 앉았던 사람들,

버스 매표원, 불친절했고 상냥했던 기사와 안내양,

그리고 버스 속 차창을 통해 바라봤던 작은 마을들과 실개천들,

그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다시 그려졌다.

그래 저곳이, 저들이 나의 무릉도원이요 청학동의 사람들 아닌가?

 

! 나의 청학동이여, 무릉도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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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든남자   2018-01-02 21:57 수정삭제답글  신고
지리산의 주능선은 예술이군요 평생에 지리산을 세번쯤은 올라가 봐야 인생을 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두번 올라 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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