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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길 칼럼] 묘제의 변천
TheFestival 기자    2018-06-19 15:53 죄회수  770 추천수 3 덧글수 2 English Translation Simplified Chinese Translation Japanese Translation French Translation Russian Translation 인쇄  저장  주소복사

묘제의 변천 

- 김원길     


천 년 전 이집트의 피라밋에서 발굴되어 대영박물관에 말라 비틀어진 채 누워 있는 파라오의 미라를 보며, 폭군 람세스 2세가 아니라 성인 모세라 할지라도 사람은 죽어서 육신을 이런 식으로 남겨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썩지 말라고 알콜에 담겨진 레닌, 마오쩌뚱, 김일성, 김정일의 시신도 언젠가는 관광객 앞에 노출되어 비웃음을 살 것이다. 악당의 시신만이 아니라 위인의 기념비나 동상까지도 비난과 훼손의 대상이 된 적이 있는 걸 보면 존경과 권위를 형체로 나타내는 게 부질 없어 보인다. 

결국 20세기에 와서 서양의 국립묘지 같은 데서 화장과 평장(平葬)을 선택한 걸 보고 "진작 이럴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요즘 유럽에선 화장도 에너지 소모가 많다고 시신의 냉동 분쇄를 시행한다고 한다. 나는 불이든 얼음이든 죽으면 곧바로 사라지길 바라는 쪽이다. 

한국사회도 장묘문화에 대변혁이 오고 있다. 화장 선호는 말할 것도 없고 깊은 산 높은 꼭대기에 있는 분묘를 파묘(破墓)하여 새삼 화장을 하고 유골을 산골(散骨), 자연장, 수목장, 납골, 합묘 등으로 정리하고 있다. 죽음이 너무 흔하다 보니 사체에 대한 외경이 감소하고 바쁜 일상 때문에 잊혀지고 버려진 무덤 또한 늘어나고 있다. 

지난 농경시대, 사람들이 산을 가까이 하고 살 땐 산소 찾기가 어렵지 않았지만 "60년대 이후 산림녹화 사업으로 숲이 무성해지고 이농 러시로 농촌에 주민이 줄어서 부모조상의 무덤 찾기가 어려워서 생긴 현상이다. 

"나는 아직 형제 종반(從班)들과 산소를 다니지만 나 죽고 나면 하나 밖에 없는 아들과 딸자식에게 어떻게 저 험악한 산을 오르내리게 한단 말인가?"  

해마다 추석 때면 성묘 때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들린다. 성묘하러 갔다가 산에서 길을 잃고 되돌아 온 이야기, 남들이 우리 부모 산소에 와서 벌초하고 제사를 지냈더란 이야기, 서울서 온 고향 사람들이 산 밑까지 와선 망제(望祭)를 지내자 시골 노인 왈 "망제 지낼 바엔 서울서 지낼 것이지, 쯧쯧.."  

지손(支孫)들이야 산소가 몇 위(位) 되지 않지만 종가들은 최소 스무 위가 넘으니 더 큰 문제다. 종가들도 이런 때를 예견하여 노종손에게 가까운 곳으로 이장(移葬)을 하자고하면 으레히 

"수 백 년 고이 잠든 체백(體魄)을  이리저리 옮기는 건 안될 일, 정 어려우면 묵히람“  

그런데 묵히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묘비를 보고 그 자손을 비난을 할 테니 그것도 문제다. 그래서 찾은 방안은 묘는 묵히되 봉분의 흙을 유골 삼아 가져 와 평지에 묻고 그 위에 표석을 세워 거기를 산소로 삼고 제사를 지내는 방안이다. 죽으면 썩고 말 시체 하나로 후손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영생도 불멸도 시신으로 성취할 순 없는 것이다. 파라오도 시장거리 좌판 위의 육포(肉脯) 꼴이 아닌가?


나는 지난 4월부터 두 달 째  멀고 가까운 선조의 산소에서 비석과 상석, 혼유석, 향로석 등 석물들을 시골집 가까운 남향 산자락에 옮겨 와서 합동제단소를 만들고 있다. 우리 파조를 제외한 12대조 이하 증조부까지의 오래된 비석과 석물을 날랐다 석 줄로 진열해 놓으니 얼추 작은 비림을 이루어 고풍하고 장중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원래의 묘소에는 봉분과 면석(面石)을 그냥 두었다. 생전의 조부님 분부대로 이장은 하지 않았다. 그냥두면 유해는 저절로 자연으로 돌아 갈 것을 왜 이리저리 수습하여 옮기는가? 봉분엔 저절로 잡초와 나무가 자라나고 허물어지거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만에 하나, 그 무덤자리를 찾아야 할 필요에 대비해 스마트 폰의 ‘정확한 고도계’로 고도와 위도와 경도를 알아내서 기록해 두었다. 그런데 내 조부께서는 이장은 하지 말라면서도 비석을 어쩌란 말씀은 하지 않았다. 묻으라거나 옮기라거나 말씀하지도 않으셨다. 그런데 나는 그 비석과 상석들을 죄다 옮기고 거기에 원래 봉분의 흙 세 삽을 체백으로 삼아서 제사를 지낼 제단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흙을 골호에 담아서 묻을까 하다가 빨리 자연에 섞이라고 그냥 혼유석 위에 뿌려 놓았다. 골분(骨粉)도 아닌 생흙을 체백으로 여기자는 마당에 새삼 골호에 담아서 묻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제 추석이나 묘사 때 조상 산소 가는 일은 예전에 비하면 일도 아니다. 과거처럼 온 문중 사람들이 이산 저산 나뉘어져 벌초하고 성묘를 끝내고는 급급히 돌아가느라 고향 사람들 얼굴도 채 못 보고 떠나오는 일이 없어졌으니 얼마나 잘 된 것인가. 한 자리에서 합동으로 성묘하고  음복을 나누며 회포를 풀 수 있으니 그야말로 숭조돈친(崇祖敦親)의 자리가 된 것이다. 성묘 다니는 시간도 단축 되었고 제수 비용도 줄어들었지만 뿌리에 대한 긍지는 더욱 높아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남들과 달리 산소에서 석물을 날라 온 이유는 두가지이다. 거기 쓰인 글씨가 유명인의 명필일 수도 있고 비문이 명문일 수도 있고 자손으로서 잊어서  안될 선조의 이력과 역사적 사건의 기록이 담긴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석물들을 만들어서 높은 산에 올려 세운 조상님들의 노고와 정성을 생각하면 그걸 그냥 산에 버리고 온다는 것은 죄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수소문 끝에 산역(山役)만 삼십년을 한 베테랑 굴삭기 기사의 도움으로 비석 열두개와 상석 열 여섯 개를 옮겨 올 수 있었다. 가장 멀리서 온 것은 내 5대 조모의 비석으로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 앞산에서 왔고 가장 높은 곳에서 온 것은 해발 4백 60미터인 임동면 덕강리 뒷산에서 왔다.

나는 제단소 입구에 세운 안내비에 <芝村 종가 碑林>이라 썼다 먼 훗날 시속이 바뀌어 제사를 지내지 않을 때에도 이렇게  제단소였지만 야외박물관의 기능을 하도록 한 것이다. 전통문화의 가장 좋은 보존 방법은 그것을 관광자원화하는 것이다. 남들이 자꾸 보러 오는 곳은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는 지촌 김방걸(金邦杰) 선생의 역대 주사손(胄嗣孫)의 합동 제단소입니다. 열선조의 묘소가 험준한 산중에 산재해서 성묘가 극난하여 종가 가까이로 옮긴 것입니다. 옛어른들이 성력을 다해 만드신 석물과 글씨와 문장을 한 자리에 보존하고 회전(會奠)을 통해 숭조돈친(崇祖敦親)의 미풍을 이어가고자합니다. 종친들도 쉽사리 제단소와 종가를 함께 둘러 볼 수 있고 이를 구심으로 더욱 족의(族誼)를 돈독히 할 것입니다. 이 곳을 찾는 방문객도 전통유가의 법고창신(法古創新)한 장묘문화를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단소 조성비는 전액 종중 별묘소(別廟所) 기금으로 충당하였슴니다. 2018년 6월  일 지촌선생 13대 주사손 김원길”



김원길 약력

1971 월간문학 출신 시인

1974 첫시집 <개안>, 이후 여러 권의 시집을 냄.

2016 영어, 일어, 불어, 중국어 등 4개국어로 번역 출간됨

2002 편저<안동의 해학>, 2012 시론집<시를 위하여>발간

1986~2017 지례예술촌설립, 운영

2012 옥관문화훈장 수훈

2017 대한민국한류대상 수상

2016~ 안동신우대학학장

2017~ 안동문예대학학장

2018~ 한국펜클럽경북지회장

태그  김원길컬럼,장묘문화,지촌김방걸,합동제단소,지례예술촌 김원길,람세스2세,숭조돈친,혼유석,향로석,봉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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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sta34   2018-06-20 10:29 수정삭제답글  신고
영과육 영혼과 육체가 완전분리됨이 죽음이거늘 어찌 후손들이 육체를 아까와할까..
HappyMom   2018-06-20 09:21 수정삭제답글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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